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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무공 동상은 언제 누가 왜 만들었을까? 이순신장군 동상의 흥미로운 사실들
    라이프:정보:건강 2017. 12. 11. 07:00

     광화문을 지날 때 마다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왜 하필 광화문 광장에 세워졌을까요? 또 이순신 장군 동상은 언제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동상의 건립시기는 바로 제 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8년에 세워졌는데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충무공 이순신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인물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조선시대부터 충무공을 기리는 행사가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도 매년 4월 28일에 탄신제전을 올리게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이런 행사들이 국가적 행사로 더욱 격상되기 시작했습니다. 동상을 세우게 된 것도 그런 일련의 과정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무인, 무신을 대표하는 존재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애국 군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군인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정권에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순신 장군을 구국의 영웅이자 군인정신의 표상으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66년 4월 아산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고 1967년에는 당시 문교부령으로 4월 28일을 충무공 탄신기념일로 제정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68년에 서울 광화문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게 된 것이죠.


     동상의 높이는 바닥에서 꼭대기 까지 전체 높이가 17미터, 장군 동상 키가 6.5미터, 기단이 10.5미터입니다. 청동입상, 즉 서 있는 형태로 건립되었구요. 아랫쪽 주변 조형물로는 거북선 모형 1개와 북 2개가 있습니다. 높은 곳에 우뚝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왜 하필 네거리 한복판에 세웠을까요?


     1968년 당시 풍수지리학자들이 "세종로와 그 앞에 이어지는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서 남쪽으로부터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온다. 이 기운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인물로 동상을 세워서 국가를 수호하는게 좋겠다." 라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즉 이 풍수지리학자의 의견에 따라서 광화문 네거리, 세종로 한복판에 일본이 무서워하는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동상의 모습을 보고 건립 초기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칼을 왜 오른쪽에 차고 있느냐? 오른손잡이라면 칼을 왼손에 차고 있어야 맞는것이 아니냐?"

    "칼 길이도 너무 길어서 우리나라 칼이 아닌 꼭 일본도 같이 생겼다."

    "입고 있는 갑옷 또한 중국식이다." 등의 지적이 그것입니다.

     


    조선식 갑옷은 두루마기 처럼 입는 형태인데 중국식 갑옷은 덮어쓰는 형태입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에서 어깨 부분이 조각으로 덮어져 있는것을 보면 이게 중국식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또 "동상의 얼굴도 현충사에 걸려있는 국가 표준 영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동상 아래에 있는 북은 왜 누워 있느냐? 전쟁터에서 전쟁을 독려하려면 서있어야하는것이 아니냐?"


    이런 지적들이 계속 제기되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혹을 해소하려면 동상의 제작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죠? 이순신장군 동상은 조각가 김세중 선생이 제작했습니다. 서울대 미대 교수를 재직했고 국립현대미술관장등의 미술행정가로 활동했던 분입니다. 이 분은 유엔참정기념탑, 유관순상 등의 많은 기념물 조각을 남기는 등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조각가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6년에 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앞서 나온 지적들을 받도록 제작을 한것일까요? 김세중 선생은 이미 작고하신지 오래였고 그 가족들이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칼을 오른쪽에 차고 있는것은 전시가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 이긴 장군의 모습이기 때문이고 오른손으로 뭔가를 쥐고 있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 "칼이 긴 것은 현충사에 보관되어있는 장도를 참고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칼에는 유명한 글이 적혀있죠.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 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이런 글귀는 일본을 물리치기위한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1970년대에 이런 논란이 계속 제기되자 당시 정부가 한때 동상을 새로 만들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1979년 5월 당시 문화공보부가 심의를 거쳐서 동상을 새로 만들기로 방침을 세웠었습니다. 하지만 미술계가 거세게 반발했고 얼마 후 10.26 사태가 발발하면서 동상 재건립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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